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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

성령론과 기도

Author
westside
Date
2020-02-25 10:59
Views
114
성령론과 기도

성령에 대하여 신학적인 논쟁이 많다. 성령으로 거듭남, 성령의 세례, 성령의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의 열매 등에 대하여 교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유튜브에 성령론 강좌나 설교 동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성도들이 헷갈릴 정도로 다양한 해석들이 많다. 특히 성령세례와 방언에 대하여는 신학적인 배경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전혀 판이한 강의도 있다. 단에서 성령에 대하여 말하기가 쉽지 않다. 성도들도 성령에 대한 설교에 민감한 반응을 한다. 성령론이 기독론만큼이나 중요한데 안타깝다.
고린도 교회도 성령론으로 애우 혼란스러웠다.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오히려 은사 때문에 무질서하고 시끄러웠다.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성도들의 변화된 삶이 따르지를 못했다. 교회 안에 여러 당파가 있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판단하였다. 음란한 도시의 영향을 받아 부도덕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성행하였다. 교회가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거룩함을 상실했다. 어쩌면 한국교회와 비슷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한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면 성령을 말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령의 은사로 어지러웠지만, 성령을 강조했다. 모든 은사를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권면했다. 은사를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은사를 받은 자들이 경건의 훈련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은사는 반드시 열매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바울은 육신에 속하지 말고 영에 속하고,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고 했다.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충만 하라고 명령했다. 바울 자신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한다고 했다. 바울서신에서 여러 차례 성령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루어 놓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신학적인 해석도 중요하다. 그러나 신학에 묶여 성령의 역사를 막는다면 더 큰 문제이다. 교리상으로 성령론을 말하기 전,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우선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기도할 때에 성령님은 나타나 역사하신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31)

200226 박헌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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